[워싱턴 인사이트] UC어바인 김경현 교수 "할리우드 공식 벗어나 현실 직시…K-컬처는 75년 미한 관계가 낳은 결실"
2 Sep 2026, 19:28 GMT
By 김영교
Credit: 김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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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로벌 열풍의 근원에는 70여 년간 이어진 미국과 한국 간의 긴밀한 문화적 연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는데요.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C Irvine)의 김경현 교수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K-콘텐츠는 서구 관객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도, 뻔한 신데렐라식 해피엔딩에서 과감히 탈피해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었다"고 진단했습니다. 김경현 교수를 화상으로 만나봤습니다. 앵커) 요즘 한국 문화와 음식 등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특히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이렇게 많은 글로벌 히트작을 내고 권위 있는 상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비결이 뭘까요? 김경현 교수) 제가 늘 이야기해 왔듯이 이것은 거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약 3세대에 걸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과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왔습니다. 또 지난 75년에 걸쳐 이제는 문화적으로도 아마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두 나라는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네, 약 3세대가 걸렸지만, 두 국가 사이의 이러한 밀접성은 마침내 문화적 주도력, 단서를 달자면 '하위문화적 주도력'으로 전환되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좋든 싫든 지난 75년간 미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해 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지난 20여 년에 걸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지닌 국가로 부상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양국 간의 이러한 긴밀한 관계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문화적 부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앵커)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들이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그토록 깊이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경현 교수) 그 작품들은 할리우드의 영화적 표현 방식을 매우 능숙하게 차용하고 있습니다. 제작 수준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 면에서 매우 뛰어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 중 하나는 한국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등장 속에서 매우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성향을 띠게 된 나라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이런 요소가 결합된 것입니다. 서구 관객에게 매우 익숙한 형태를 띠면서도, 동시에 오늘날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현실을 짚어냅니다. 자본주의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라는 극단적인 양극화를 만들어냅니다. 한국은 바로 그 양극화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 일종의 챔피언 역할을 해왔습니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 작품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뼈아픈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장르적 관습을 품고 있으면서도, 할리우드가 전형적으로 답습해 온 신데렐라식 해피엔딩의 환상에서 과감히 벗어난 것입니다. 앵커) 최근 몇 년간 '미나리', '패스트 라이브즈', '성난 사람들 (비프)'와 같은 한인 디아스포라 작품들이 대중과 평단의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한국 국내 영화계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미주 한인 창작자들 사이의 창의적 상호작용과 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김경현 교수) 저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십대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은 다소 무시당하거나 외면받던 나라였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존중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어두운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내세울 만한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이 전혀 없었습니다. 미국 TV와 대중매체 속 롤모델들은 거의 다 백인이었고, 구색 맞추기식의 소수계 출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에게는 열세 살 된 한국계 미국인 딸이 있는데, 요즘 제 딸의 롤모델은 거의 다 아시아계, 구체적으로는 한국인들입니다. 제 딸이 한국어를 제한적으로만 구사하는데도 말이죠. 이제는 많은 한국 스타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스티븐 연처럼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계 미국인 스타도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양쪽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인물들이죠. 그들은 한국을 멋진 곳으로 인식하며, 이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할 뿐만 아니라 양국 간의 문화적 번역과 교류, 정서적 소통을 훨씬 더 활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 감독만 보더라도 그런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최근 작고하신 1980~90년대 한국 영화계의 거장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가 그녀의 삼촌이며, 그녀의 아버지 역시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존경받는 영화감독입니다. 그러한 창작적 배경이 있다면, 이제 단순히 '한국계 미국인 대 한국인'의 구도가 아닙니다. 양측 간에 매우 활발한 교류와 인적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대단히 긍정적인 발전입니다. 앵커) 앞서 따님이 한국 문화를 멋진 것으로 여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처럼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주목을 받게 되면서, 미주 한인들이 자신들의 뿌리와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김경현 교수) 제가 겪었던 경험을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1980년대와 90년대에 미국에서 자란 저와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은 깊은 열등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문화적 유산이 거의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은 생소하고 어두운 이미지였고, 뉴스에 나오는 것은 늘 북한 관련 소식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한국 관련 이야기를 찾을 수 없어 일본 문학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껴야 했을 정도로 주류 문화 속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살고 있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그러한 열등감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시아계가 여전히 소수로서 고립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제 딸을 보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피해의식이나 자기혐오를 겪어본 적이 없는 제 백인 친구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제 딸과 그 아시아계 친구들은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당당하게 행동합니다. 제가 자라 온 시대와 비교하면 실로 엄청나게 다른 경험입니다. 앵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이렇게 커진 것을 돌아볼 때, 이번 시대가 글로벌 시각 문화에 남길 가장 지속적인 유산(legacy)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경현 교수) 의심할 여지 없이 21세기의 가장 경이로운 문화적 르네상스입니다. 1970년대 자메이카가 레게라는 장르를 통해 그러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음악에 그치지 않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라스타파리아니즘 등 세계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며 유행을 이끌었습니다. K팝은 여러 방면에서 그 정도의 영향력을 달성했거나, 혹은 그 이상을 이뤄냈다고 봅니다. VOA 뉴스